My Ex-Husband Came Back Crazy - chapter 45
45화
Chapter 5. 비밀(2)
어린 셀리아는 몽크리프 후작 부인이 주최한 가든파티에서 도망 나왔다.
‘이렇게 예쁜 정원을 두고 어른들 대화 나누는 거나 구경하라니. 너무하잖아.’
사춘기가 오며 한창 삐딱하던 시기의 그녀는 무서울 게 하나 없었다. 아버지의 눈초리가 조금 매섭겠지만 감당할 자신도 있었다.
몰래 나갔다가 돌아온다면 완전 범죄였으니까.
“몽크리프 후작 부인은 미각이 조금 이상하지만 미적 감각은 훌륭하네.”
디저트로 준비되었던 끔찍하게 짠맛이 나는 컵케이크를 뒤로하고 그녀는 화려하게 펼쳐진 정원으로 몸을 숨겼다.
아치형 회랑을 뒤덮은 장미가 그녀를 포용했다.
무릎까지 드레스 자락을 올리고 성큼성큼 걷는 그녀를 유모가 봤다면 기겁했겠지만, 여기는 그녀를 붙들고 잔소리할 사람이 없었다.
‘종이 치기 전까지 여기 있어야지.’
하얀 자갈길은 곡선을 그리며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햇빛이 잎 사이를 통과해 떨어질 때마다 길 위에는 금빛 무늬가 생겼다가 사라졌는데, 셀리아는 그것만으로도 이곳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활짝 핀 장미, 흰 작약, 연보라 아이리스, 라벤더와 데이지.
그녀는 꽃들이 만들어 준 길을 치맛자락을 그러쥔 채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다 눈앞의 광경에 발이 바닥에 들러붙은 듯 우뚝 서 버렸다.
그녀가 목적지로 삼았던 커다란 나무 아래, 그녀 또래의 사내아이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어디 갔나 했더니 저기에 있던 거야?’
셀리아는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남자애들을 보며 불만 가득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성실하고 착한 아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루시어스가 있었다.
셀리아는 얼굴을 찡그린 채 몸을 돌렸다.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눈에 안 보여서 좋아했더니,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그때, 잎새를 흔드는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왜 그걸 다른 사람한테 말했는데!?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셀리아의 발이 반쯤 돌아선 자리에서 멈췄다.
나무 아래 엉켜 선 아이들 사이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숨소리가 새고 있었다.
“쯧, 사내 녀석이 그깟 일로 울기는. 그러게 누가 헤니타 영애의 물건을 훔치래?”
소년들 사이에 목소리가 불쑥 커졌다.
“그. 그래도 남이 믿고 말한 걸 떠들었으면 사과를 해야지!”
“나보고 자존심 상하게 남작가 자식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제는 장난처럼 넘길 분위기가 아니었다.
언성이 높아지던 그들은 곧 해결책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가장 발언권 있고, 비교적 어른스러운 루시어스를 찾는 것이었다.
“공자, 공자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셀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쫑긋거렸다.
사각, 하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먼저 났다.
곧이어 책장을 덮는 소리와 함께, 변성기를 지나며 목을 한 번 긁고 내려온 듯한 낯선 음성이 울렸다.
“남의 비밀을 멋대로 옮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셀리아는 무심코 그 목소리를 따라 귀를 기울였다.
“믿고 맡겨진 말을 흥밋거리처럼 다루는 건,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니까.”
루시어스는 담담하게 제 의견을 늘어놓았다.
“역시 공자도 그렇게 생각을-!”
“다만.”
그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그 비밀이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남을 해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아이들 중 몇이 숨을 삼켰다.
“그러니 누군가가 불쾌해할 비밀을 만들지 마.”
수풀 너머로 슬쩍 몸을 숨겼던 셀리아는 눈만 튀어나오도록 고개를 쭉 뺐다.
나무 아래 앉은 루시어스는 햇빛을 받은 금발이 차분히 정리된 채였고, 푸른 눈은 여전히 또래답지 않게 차분하고 깊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키가 더 큰 건지, 곁의 소년들보다 어른처럼 보이기도 했다.
“애초에 남에게 떳떳하지 못한 비밀은 끝까지 비밀로 남을 수 없으니까.”
이내 고개를 들며, 그가 말을 맺었다.
“…….”
그 순간, 어쩐지 수풀 너머로 그와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했다.
‘재수 없어.’
착각이겠지만.
***
오랜만에 돌아온 공작성은 여전했다.
셀리아는 짧은 감상을 남겼다.
먼지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성내, 깔끔한 하인들의 인사 따위가 특히 그렇달까.
“먼저 돌아가 쉬고 있을래?”
“너는?”
미리 마중 나온 이들에게 짐들을 정리하라 지시하고 있자니, 루시어스가 차분한 얼굴로 말해왔다.
“난 공작님이 부르셔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어제 잠결에 공작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막 돌아온 아들을 부르는 행태가 잘 이해되질 않았다.
‘루시어스가 기억을 잃고 처음 보는 거니 빨리 보고 싶었나?’
그러면 자기가 오면 될 것을, 왜 굳이 여독도 안 풀린 그를 부르지?
셀리아의 추측이 이어졌고, 그사이 카벨이 와서 루시어스를 데려갔다.
홀로 남은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홀 한편에 놓인 유백색 대리석 나선계단은 위층까지 매끈하게 휘어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여행으로 엉망이 된 드레스를 가볍게 정리한 뒤 계단에 첫 발을 올렸다.
그때, 어디선가 맥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셀리아.”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노어가 불쑥 나타나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막 계단을 오르려던 셀리아는 발을 헛디뎌 난간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니, 이게 무슨.”
고귀하신 공작 부인께선 원래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드물었다.
최근에는 특히 더 그랬다. 루시어스가 기억을 잃은 뒤 부딪쳤던 껄끄러움이 그들 사이에 남아 있었으니까.
“잠깐 시간 좀 내주렴.”
“언제 제 시간을 신경 쓰셨다고. 말씀하세요.”
퉁명스럽게 잘린 말끝에 엘리노어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했다. 그 탓인지 뒤에 선 시녀들의 시선이 곧장 날카로워졌다.
셀리아는 날 선 시선들에 윈드미어 가로 돌아왔음을 체감했다.
하나같이, 그녀를 향한 불평만 주워 모아도 서가 한 칸은 너끈히 채울 듯한 낯들이었다.
“잠깐 이리 오렴.”
그런 시녀들과 셀리아의 사이를 얇은 몸으로 막아선 엘리노어가 어쩐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저를 부르신 게 맞나요?”
셀리아가 검지를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엘리노어는 고개를 위아래로 짧게 흔들었다.
“얼른.”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셀리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의 손짓에 이끌려 움직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구석진 방에 들어섰다. 장식이라곤 벽에 걸린 작은 풍경화 하나와 삭은 커튼이 전부인 곳이었다.
엘리노어는 바로 시녀들을 물렸다. 마지막 시녀까지 물러나자 그녀는 직접 문을 밀어 닫고, 손잡이까지 한 번 단단히 눌러 확인했다.
‘하… 귀찮게. 이제 막 돌아오자마자 이게 뭐야.’
이를 지켜보던 셀리아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손끝에 머리칼을 감아올렸다.
그사이 엘리노어는 말 대신 구두 끝으로 바닥만 건드려댔다.
좁은 방 안을 옮겨 다니며 머뭇거리던 그녀는 갑자기 셀리아 앞에 멈춰 섰다. 지루한 얼굴이던 셀리아의 눈이 커졌다.
“집에 공작님이…… 내 남편이 왔단다.”
루시어스에게 이미 들은 이야기였다.
셀리아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런데 그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고 이러는 걸까.
공작은 외부에 일이 없는 한 늘 본성에 머물렀다. 동관에 거주하는 셀리아와는 일 년에 두세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 사이이기도 했다.
“따로 부르실 정도의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데요.”
셀리아가 무심하게 시선을 돌리는 사이, 엘리노어의 몸짓이 더 바빠졌다. 꼭 날갯짓하는 나비처럼 분주했다.
“그게 말이지…….”
메마른 입술 선을 더듬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내 남편이, 루시어스가 기억을 잃은 걸 브릭웰의 짓으로 여기는 것 같아.”
“부인처럼 말씀하시는 건가요?”
“셀리아!!”
윈드미어 가 사람들에겐 비꼬는 게 일상이다 보니, 또 습관처럼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심지어 브릭웰의 짓이 맞다는 걸 아는 셀리아는 뒤늦게 입가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아, 이건 실수예요.”
“너…너는 정말……!”
엘리노어가 답답한 얼굴로 그녀를 보다가, 결국 손에 얼굴을 묻었다.
“쉽게 볼 일이 아니야.”
셀리아로서는 지금 이 상황도 쉽지 않았다.
금방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 덕에 그녀는 이미 충분히 난처했다.
“나는, 그저 합리적인 의심을 네게 말한 것뿐이지만…… 그뿐이지만……”
초조함이 엘리노어의 얼굴에 그대로 떠 있었다.
말을 해도 되는지,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셀리아는 그 모습을 이상하게 내려다보았다.
“조심하렴. 혹시라도 공작이, 내 남편이 너를 부르더라도 가지 마.”
곱지 않은 의문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엘리노어가 말을 맺었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