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ox Scans
  • Home
  • All Series
    • Action Series
    • Romance Series
    • Trending
  • Buy Coins
Sign in Sign up
  • Home
  • All Series
    • Action Series
    • Romance Series
    • Trending
  • User Settings
  • Buy Coins
  • Action
  • Romance
Sign in Sign up

Novel Test - Chapter 1

  1. Home
  2. Novel Test
  3. Chapter 1
Next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002화

[이번 역은 원한, 원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괴담 속 지하철.

나도 이 침묵에 한몫하는 중이다.

이미 아는 괴담인데도 위튜브 연관영상이 뜨면 썸네일만으로 놀라서 ‘관심 없음’을 누르고 넘어가는 나 같은 인간이, 괴담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차라리 그냥 죽여라….’

그게 호상이겠다.

뭐 어떻게 된 일인지 추리할 기운도 없어질 지경이다. 나는 세상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양손으로 얼굴을 누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깜박.

[1등 :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

“……?!”

고개를 들었다.

내 시야를 따라서 메모장 같은 것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떠도 보인다.

공책을 쭉 찢어서 접어 만든 것 같은 종이쪼가리가 휙휙….

“이건….”

잠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당장 입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띄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대신 눈앞에 있는 메모장을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손으로 쿡 눌렀다.

펄럭.

놀랍게도 메모장이 마치 펼쳐지듯이 움직이며 작은 뭔가를 뱉어냈다.

“……!”

나는 그것을 황급히 손으로 가리듯 잡았다.

그건… 그립톡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생긴 검은색 그립톡, 특이한 점이라고는 중앙에 황금빛으로 ‘X’자가 처져 있다는 정도.

하지만 바로 그 무늬로 이 그립톡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굿즈잖아.’

내가 이 이상한 상황에서 눈 뜨기 바로 직전에 들렀던, <어둠탐사기록>의 팝업스토어에서 팔던 그 굿즈!

내가 오늘 구매한 굿즈 중 하나였다.

떨리는 손으로 그 그립톡을 집어 들었다.

이게, 작중에서 무슨 기능이었느냐면….

—–

[메모리얼 그립톡]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C급 아이템.

스마트폰에 부착하면 자신이 기억하는 텍스트를 일목요연하게 페이지로 구현하여 보여준다.

환경부 산하의 초자연재난관리국 9급 지급품.

—–

‘기억을 텍스트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립톡의 접착부를 제거하고 당장 내 스마트폰에 부착했다.

그 순간이었다.

내가 드문드문 기억하던 <어둠탐사기록>의 줄글이, 선명하게 형태와 틀을 갖추고 페이지로 폰 화면에 떠올랐다.

======================

어둠탐사기록 / 괴담

[심연교통공사에 어서오세요]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D-16.

초창기에 작성된 어스름(D) 등급 어둠 중 홀로 압도적인 탈출난이도를 자랑하는 미친 괴담. 그리고 영원히 고통받는현장탐사팀

탐사는 총 56회까지 기록되었다.

======================

“…!”

이거 그러니까….

‘내가 산 굿즈가 실제로 작동한 건가?’

그러고 보니 내 무릎에 놓여 있던 검은 굿즈박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 굿즈박스가… 저 메모장으로 변해서 내가 산 굿즈를 뱉은 거라고?’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이란 말인가.

아니, 그래도 분명 나한테 유리한 건 맞다.

내가 들어온 이 <어둠탐사기록>이라는 괴담 세계관.

이걸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인터넷 고인물들이 자기 창작욕을 불태웠는지 아는가? 말 그대로 수백 가지의 괴담이 있었다.

당연히 머릿속으로 그걸 페이지 펼치듯이 바로 떠올리는 건 힘들다.

게다가 괴담답게 생존법을 직접 서술해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읽으며 각자 추론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서 정답을 도출하는 건 더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읽은 걸 줄글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고.’

이게 가능하다면 당장 먼저 봐야 하는 건….

‘지난 탈출 사례!’

나는 당장 위키 페이지를 내렸다.

그리고 ‘3.2 탐사 기록’까지 숨 가쁘게 읽어내린 후.

“…….”

빠르게 추론을 해냈다.

‘알겠다.’

어느 역에서 내리면 되는지 내 나름의 정답을 찾아냈다는 말이다.

근데 문제가 있다.

“…….”

나는 같은 칸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포함해 총 8명의 젊은 신입사원.

사람 2명이 라이브 해체당하는 광경에 패닉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대화를 시작 중이었다.

“방금 무슨… 원한역이라는 거, 사람 화낼 때 그 원한…… 말하는 것 같죠?”

“예…….”

“하, 전화도 데이터도 안 터지고 진짜… 아, 이게 대체 무슨 일….”

“…….”

그래. 내가 이 서로 낯설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정답 역에 내리도록 설득하냐가 문제다.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사람이 함께 내리게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주먹을 쥐었다.

갑자기 이 괴담 세계관에서 희생당한 엑스트라들도 진짜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며, 그들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숭고한 사명 의식이라도 가득 찼냐고?

그게… 음, 그것도 물론 인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최우선 순위는 그게 아니었다.

나를 가장 절박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나 혼자 못 내린다…!’

그렇다.

여기 역들이 다 꼴이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

혼자서 눈알로 가득 찬 역, 암전된 역,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힌 역을 걸어 나가야 한다고?

그 꼴을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나다 못해 네 발로 사족 보행을 할 것 같다.

‘중간에 졸도해서 탈출 못 할 확률, 9할 이상…!’

안 돼. 살려줘.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나는 당장 입을 열려다가, 도로 닫았다.

‘그래도 다짜고짜 괴현상이니 어둠이니 떠드는 건 바보지.’

누가 자기가 쯔꾸르 공포게임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인정하고 싶겠는가. 안 믿고 극렬히 비웃으며 거부하거나, 믿어서 더 패닉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다.

‘천천히… 신뢰부터.’

일단 한 사람.

한두 사람만 확실히 설득해 두면 사람에게는 군중심리라는 게 있어서 같이 우르르 따라 내리기 쉬워진다.

‘어디 보자. 도움이 필요하거나, 유대를 쌓을 단서가 보이는 사람이…….’

“하…… 이거 무슨 위튜브 괴담도 아니고.”

찾았다!

“괴담…이라고 하셨습니까?”

“아.”

차분한 인상의 단발머리 여성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제가 어, 위튜브로 괴담을 좀 보는데, 그게 생각나네요.”

“혹시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보통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가능한 정보를 공유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정보까진 아닌데… 말 그대로 모든 게 괴담 같아서요. 갑자기 강연실이 지하철로 변하질 않나, 사람이… 그렇게 죽고.”

직전에 벌어진 미친 해체쇼가 생각났는지 상대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다.

이해한다. 나도 정말 토하고 싶다.

서로 얼른 뇌리에서 지우도록 하자.

“아, 죄송해요. 말하다가 갑자기….”

“아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여성이 힘없이 픽 웃었다.

“에이, 여기서 제일 냉철하게 판단하신 것 같은데요.”

내가 냉철하게 졸도하는 광경을 아직 못 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어?”

그리고 놀랍게도, 이때쯤 누군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주 타당한 이유도 있었다.

“어, 아까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분 맞으시죠?”

곱슬머리에 꽤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남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강연장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가.’

그 신입사원은 대화 중인 무리 어디도 끼지 못한 듯 보였다. 목 뒤를 문지르며 나와 대화 중이던 여성을 번갈아 보더니, 곧 악수하듯 손을 내밀었다.

“저는 백사헌이라고 합니다.”

“…!”

순간 악수도 잊을 뻔했다.

백사헌?

‘네임드잖아.’

======================

어둠탐사기록 / 백일몽 주식회사

/ 등장인물

백사헌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백일몽 주식회사의 직원.

최종 직급은 과장, 총 탐사 기록은 106회, 이중 위키에 기록된 특별 사례는 17건.

별칭은 독사.

======================

<어둠탐사기록>에서 몇 번이나 활약한 직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좀 유약한 인상의 곱슬머리를 보며 침음했다.

‘이 사람이… 백사헌이라고?’

이미지가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어쨌든 텍스트로만 봤던 괴담 세계관의 직원을 실제로 보는 느낌은 정말 묘했다.

그 와중에 괴담 이야기를 처음 꺼낸 단발머리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저희 통성명이라도 하죠. 고영은입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직원의 본명이란 건 둘 중 하나다.

비교적 수월하게 괴담들을 처리하고 일찍 퇴사했거나.

빨리 죽었거나.

‘젠장….’

간혹 별명이나 코드네임만 나오는 네임드 직원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경우에는 캐릭터성이 너무 분명해서 보자마자 파악이 가능하단 말이다.

찝찝한데. 나는 잔상을 빨리 떨치며 기색을 숨겼다.

“김솔음입니다.”

악수는 빠르게 끝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하철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계속했다.

그사이 묘하게 사람들 무리가 나누어진 느낌이었다.

“아, 저분들… 앞칸이랑 어떻게든 얘기를 해보시려는 것 같은데요?”

“그러네요.”

이 괴담은 칸끼리 이동이 금지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손짓발짓을 포기하고 도로 돌아온다.

“어떡하죠? 앞칸하고 전혀 소통이 안 되는데요. 게다가 앞에서 싸움이 난 것 같은데….”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역 도착 안내방송이 내려온다.

다만 이번에는 키워드의 분위기가 다르다.

[이번 역은 황홀, 황홀역입니다.]

“어?”

웅성대던 사람들이 일순 멈췄다.

“황홀?”

“저, 황홀이면 좀 좋은 느낌 아닌가요? 어쩌면…….”

아니다.

‘이걸 그렇게 단순히 판단하면 안 되는데…!’

나는 막 읽은 탐사 기록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일단 이 괴담은 매번 나타날 때마다 역명의 테마가 바뀌었다.

그러니 ‘무슨 역에서 내려야 한다’, ‘어느 역이 정답이다’처럼 딱 맞는 단어를 사례에서 찾아내 탈출하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경향성은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

어둠탐사기록 / 괴담

/ 심연교통공사에 어서오세요

3.2 탐사기록(56번까지 기록)

1.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으로 표기된 역명.

: 2인 탈출 성공 (시도 : 파랑역)

2. 왼팔, 각막, 심장 등 신체 부위로 표기된 역명

: 탈출 실패 (시도 : 달팽이관역)

3. ■■, ■■■■, ■■■ 등 연쇄살인마의 이름으로 표기된 역명

: 12인 탈출 성공 (시도 : ■■■■역)

4. 2008년, 2012년, 2016년 등 연도로 표기된 역명

: 탈출 실패 (시도 : 2024년역)

5. 천식, 뇌졸중, 녹내장 등 질병으로 표기된 역명

: 3인 탈출 성공 (시도 : 감기역)

[더보기]

======================

보았는가? 56번 사례까지 가도 역명의 긍정적 느낌과 탈출 확률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이 황홀역에서 자칫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게 생겼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하필 도착한 승강장의 풍경이 밝고 쾌적했기 때문이다.

‘젠장.’

마치 신도시의 새 역처럼 깨끗하고 환한 역의 모습에 사람들의 분위기가 확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

“여, 여기서 내려서 사람을 찾아볼까요? 여긴 진짜로 멀쩡해 보이는데….”

반색한 사람들이 문 앞으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내 동행인 머릿수가!’

그리고 그 꼴을 목격한 내 멘탈이!

‘빌어먹을.’

나는 결국 달려서 또 문 앞을 막아섰다.

“…!”

“뭐, 뭐야.”

“기다려주십시오.”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확신하십니까?”

“네…?”

“확신이요?”

“예. 여기가 안전하다는 확신 말입니다. 아니면 추론이라도.”

나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상황이 괴담 같다는 말엔 대부분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내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고영은이 화들짝 놀랐으나 말을 철회하진 않았다.

[30초 후 출입문이 닫힙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괴담이든 공포영화든, 운과 느낌만 믿고 골라서 좋은 꼴이 나는 걸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 그게,”

“추리도 추론도 없이 정말 이렇게 목숨을 걸어도 됩니까?”

초조해하던 사람들이 잠깐 멈칫했으나, 곧 버럭 화를 낸다.

“아니, 그러는 그쪽은 뭐 대단한 추리라도 했어요?”

“이 사람 아까부터 계속 답답한 소리만 하는데….”

“아 빨리 비켜요! 무슨 추론이니 뭐니… 이게 뭐 골든벨인 줄 알아요? 누가 힌트라도 줬대?”

“예.”

“…?”

“힌트, 주고 있습니다.”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위를 가리켰다.

스피커가 달린 지하철 열차 전광판을.

“안내방송 말입니다.”

-최종 목적지까지 쾌적한 이동을 위해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처음부터 열차 내 안내방송은 친절하게 해당 사실을 고지하고 있었다.

“계속 안내방송에 집중하고 따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골적으로요.”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나는 마침 덧붙여지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물었다.

[황홀역이 최종 목적지인 승객께선 안내방송에 따라 내리셔야 합니다.]

“황홀역이 최종 목적지인 분, 여기 계십니까?”

“…….”

“…….”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좋은 건 맞잖아요.”

“황홀하게, 그러니까 즐겁게 사는 게 인생의 목적….”

“그래서, 지금 최종 목적지가 황홀역이십니까?”

“…….”

“…….”

꺼림칙하다는 건 다들 느낀 것 같다.

하지만 한두 사람은 역으로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한테 지금 목적지랄게 있어요? 자기도 잘 모르면서 왜 이렇게 참견하시지?”

“우리가 당신 때문에 여기서 못 내려가지고 탈출 못 하면 책임지실 겁니까? 책임질 거냐고요!”

책임질 수 있냐고?

“예.”

“……!”

“어…?”

“책임지겠습니다.”

그건 쉬운 질문이다.

‘어차피 같이 탈출하려고 했어.’

여기서 내리면 오답 확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내 답이 이것보다 나쁠 확률은 없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상대가 입을 벌리고 잠시 굳었다.

“…….”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나오니 확 마음이 흔들린 건지, 갈등하는 게 눈에 보였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

그 사이 문이 닫혔다.

“아…….”

나는 자리에서 비켰다. 허망한 눈으로 문을 보던 몇몇이 문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왜 못 내리게 했냐고 화를 내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이 정도면… 됐나.’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을 때였다.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어어! 앞칸 사람들 다 내렸어요!”

“…!”

다 내렸다고?

나도 당장 열차 창문 너머를 쳐다보았다.

모두까지는 아니지만, 정말로 대여섯 명 정도가 한꺼번에 내린 것 같았다.

“…….”

후.

정말로,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걸 봐 놔야 설득할 때 조리 있게 할 수 있겠지, 젠장…….

나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창문 밖을 뿌옇게 보았다.

“어? 달린다!”

내린 사람들은 지체없이 빠르게 이동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대여섯 명의 인영이 승강장의 출구, 계단 방향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늦었다.

“악!”

승강장 바닥이 노란빛으로 끓어오르며, 뛰는 사람들의 발이 바닥으로 녹아내리듯 꺼지기 시작했다.

“그, 금…?”

마치 하반신이 황금으로 변해 바닥에 눌어붙는 것 같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려 애쓰는 것 같았으나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고….

결국 상반신만 남은 몸뚱어리가 비틀거리더니 툭, 계단 앞으로 떨어졌다.

그마저도 반짝거리는 금으로 변했다.

황홀해지는 가장 쉬운 수단으로.

“히윽.”

“흡.”

[열차가 황홀역에서 출발합니다.]

출발하는 열차칸 안에서는 충격으로 숨을 삼키는 소리와 울먹이는 소리만이 울렸다.

내리려던 사람 하나는 다급하게 나를 잡고 물었다.

“채, 책임진다면서요. 정말 안전한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거, 장담할 수 있습니까? 예?”

“예.”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왜 갑자기 내가 정답을 내놓는 게 기정사실이 된 걸로 논리가 점프했는지 어이가 없었으나, 사실 그 대답밖에 못 하는 상태라서 그렇다.

‘죽겠네, 진짜.’

하반신 후들거려서 쓰러질 것 같다…!

사람들 하반신 터지는 게 계속 저화질로 머릿속에 재생돼서 속이 울렁거렸다.

확실한 건 여기서 살아 나가더라도 오늘 잠자긴 글렀단 것이다.

이 와중에 백사헌도 감탄하며 말을 붙인다.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선생님?”

“아, 제가 원래 사람 만나면 자꾸 선생님으로 불러서.”

그리고 머쓱하게 웃더니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다.

“요새 세상엔 선생님 같은 사람이 드물잖아요. 막, 단호하게 맞다 아니다 이야기 못 하고 ‘제 생각에는 ~같아요’ 같은 화법을 쓰게 되는데.”

“…….”

“장담하신 만큼 꼭 좋은 결과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어… 덕담은 고맙지만,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유체이탈 화법을 쓸 상황이 아니다.

‘여기서 좋은 결과가 없으면 그쪽도 죽는데 말이지….’

잠깐.

아니지.

내가 무섭다고 징징대느라 놓친 게 있었다.

‘<어둠탐사기록>에 백사헌이 직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다는 건, 이 입사 시험을 통과했단 뜻일 텐데?’

그렇다면 그냥 백사헌이 나가려는 역에 붙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 그리고 고영은 씨를 설득해서 나가면 3명이다. 원래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따라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같이 우르르 내릴 확률도 높고.

‘이런 쉬운 방법이?’

“백사헌 씨.”

“네?”

“혹시 내리고 싶은 역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이름의 역이 나오면 내려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단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 갑자기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두고 싶습니다.”

“아.”

백사헌이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없는데요. 제가 이런 걸 잘 몰라서.”

“그렇군요.”

아직 특별히 감이 오진 않은 건가.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건 제법 괜찮은 발상 같았으니, 계속 지켜볼….

딩동.

[승객 여러분, 심연교통공사에서 쾌적한 운행을 위해 안내 방송드립니다.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

안내방송이 다시 시작됐다.

모두가 대화를 멈추고 즉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금부터 우리 열차는 곡선구간을 통과하여, 소음과 흔들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모두 착석하여 사고를 방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X발 진짜.

“다들 앉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앞에서 안내방송 이야기를 꺼낸 보람이 있을 정도의 속도였다.

아까 내리겠다고 떼쓰던 사람도 입을 꾹 다물고 가장 먼저 근처 자리에 앉았을 정도니까.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어! 앞칸!”

“저분들….”

앞칸 객석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격렬하게 말싸움을 하느라 바쁜지 다 서 있었다.

구체적인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아마 서로 고함을 지르는 통에 안내방송이 묻힌 것 같았다.

그냥 봐도 알겠다. 방금까지 같이 있던 사람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꼴로 죽는 걸 보고 완전히 패닉에 빠진 듯했다.

“뭐, 뭐라도 말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기요! 들립니까?!”

“자리에 앉으세요!”

앞칸에 가까이 앉은 신입사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앞칸 사람들은 거의 보지 않았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한 사람은 오히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앉으라고!”

“아니, 다가오지 마시고, 앉…….”

늦었다.

[곡선구간에 진입합니다….]

불이 꺼졌다.

“…!”

어둠 속에서 열차가 굉음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굉음과 겹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비명이다.

-아아아악!!

-악, 아, 아악….

물기 가득한 것이 터지는 소리.

알 여문 포도알을 꽉 쥐어짜는 것 같은, 소리.

둔탁하게 울린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

“…….”

반사적으로 소리를 죽인 이 칸의 사람들이 가늘게 떨며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불이 켜지자.

-…….

전동차 앞문의 좁은 유리창 너머로, 앞칸의 모습이 드러난다.

온통 피와 오물에 덮였다.

마치 생물만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린 듯한 그 미친 상태에서는 사람의 흔적을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전원 사망이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셔도 안전합니다. 협조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깔끔한 안내방송과 대비되는 사람들의 패닉에 빠진 소리가 열차 안을 울렸다.

“내보내 줘! 내보내 줘!”

“허어어어, 허어어… 이거 뭐야. 이거 뭐냐고…… 엄마.”

그러나 그 상태에서도 신입사원들이 입을 막고 목소리를 죽이며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려 애쓴다.

정말 목숨줄이라는 게 증명되어 버렸으니까!

‘젠장.’

분명 내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긴 하는데, 현실이 되니 너무 끔찍해서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닦아내는 손이 떨리는 것을 무시하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앞칸 문을 보면 안 된다.

‘설득, 설득만 생각하자….’

이제 몇 역 후에 제대로 된 정답역이 나오면, 분명 사람들이 같이 내려줄…….

[승객 여러분, 심연교통공사에서 쾌적한 운행을 위해 안내 방송드립니다.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다시 시작됐다.

“또?!”

“흐흐흑….”

질린 사람들의 통곡 소리를 가르고, 깔끔하고 기계적인 어투의 녹음 소리가 안내를 계속한다.

생뚱맞은 이야기를.

[분실물이 있습니다.]

잠깐.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분실물을 발견하신 분께서는 다음 역에서 하차하시여 역직원에게 분실물을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는 사례였다.

‘…기타 기록의 탈출 사례!’

======================

어둠탐사기록 / 괴담 /

/ 심연교통공사에 어서오세요

3.4 기타 기록 (탈출)

역에서 하차하여 탈출한 것 외에 탈출에 성공한 이레귤러 생존을 기록한 문서.

몇 가지 방식은 반복 관측됨. (최다 발생 기록은 ‘열차 간격을 위한 일시 정차’와 ‘분실물 안내’.)

======================

무조건적인 탈출 티켓.

안내된 분실물만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단….

‘탈출 인원은, 딱 한 명.’

……혼자서는 못 나가는 내 경우엔, 애초부터 탈락인 생존 티켓.

양손을 꽉 쥐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굴 내보내야 좋은 거지?’

아니, 내보는 게 과연 정답인가?

그리고….

[분실물은 ‘20대 A형 성인 남성의 왼쪽 안구’입니다.]

상상도 못 한 분실물이 나왔다.

 

Next

Comments for chapter "Chapter 1"

MANGA DISCUSSION

YOU MAY ALSO LIKE

imgi_17_resource (1)_waifu2x_art_noise3_scale
The Sweet Life of a Reincarnation Pro
August 2, 2025
imgi_17_resource_waifu2x_art_noise3_scale (2)
Leveling Beyond the Max
August 4, 2025
imgi_17_resource_waifu2x_art_noise3_scale
The Duke’s Bored Daughter Is My Master
August 4, 2025
imgi_17_resource_waifu2x_art_noise3_scale (2)
Necromancer Academy and the Genius Summoner
August 2, 2025
Tags:
Novel
  • Home
  • All Series
  • Buy Coins

© 2025 Lunox Scans. All rights reserved

Sign in

Lost your password?

← Back to Lunox Scans

Sign Up

Register For This Site.

Log in | Lost your password?

← Back to Lunox Scans

Lost your password?

Please enter your username or email address. You will receive a link to create a new password via email.

← Back to Lunox Scans

Premium Chapter

You are required to login first

Report Chapter